생각하면? 피터팬 증후군 어른인데 아이처럼

회사를 떠나기 전 박모(59) 씨는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 서른이 넘었는데도 결혼할 생각은 없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쁘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부모에게 모든 것을 부탁하려는 성인이 늘고 있다. │ Cuisine and Health

그렇다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힘들게 들어간 직장도 23개월 근무하다가는 상사나 동료와 마음이 맞지 않는다며 그만두는 일상이다. 그러다가 돈이 부족하면 자기 몰래 아내에게 손을 벌려 몇 번이나 받아 쓰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잔소리를 해도 그때뿐,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박 씨는 은퇴 후의 일이 걱정이다. 아직도 자신이 청소년인 것처럼 행동하는 아들이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박 씨는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피터팬 증후군 확산은 경제적 상황과 밀접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기침체 탓일까. 어느새 한국 사회에서도 피터팬증후군(Peter Pansyndrome) 현상이 만연해 있다. 피터팬증후군은 성인이 돼서도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부모나 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알려진 대로 피터팬은 영국 동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네버랜드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자유를 누리며 영원히 아이로 살아가는 존재지만 최근 들어 피터팬처럼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피터팬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댄 카일리(Dan Kiley) 박사다. 그는 1983년 발간한 저서에서 신체적으로는 어른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는 심리상태를 피터팬증후군이라고 표현했다.피터팬증후군이 사회적 심리현상의 하나로 유행하게 된 원인에는 그 무렵의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피터팬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1980년대 초는 미국이 경기침체에 허덕이면서 산업계에 해고 바람이 불던 시기다.

피터팬증후군이 사회적 현상으로 확산되는 것은 경제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 free image

또한 여성의 권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남성의 사회경제적 힘이 약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영향인지 당시 성인 남성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그런 모습이 더해졌고 결국 사회적 심리 현상으로 확대됐다.일본도 마찬가지다. 90년대부터 극심한 불황을 겪으며 취직이 어려워지자 일본 성인 남성은 사회 진출과 결혼을 미루는 대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감안할 때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피터팬증후군 역시 어려움에 처한 국가경제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한 정신과 전문의는 경기침체로 취업과 승진 등이 심해지면 개인의 역량에 따라 차별화되는 게 사실이라며 몸은 성인이 됐지만 갑자기 많은 것을 해내야 하는 부담이 커졌고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모든 것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피터팬 증후군에까지 나타났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주변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피터팬증후군 증세를 보였다고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걸핏하면 울면서 떼를 쓴다는 뜻은 아니다. 어른이 보기에 사고방식 자체가 단순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부족할 때 혹시 해당 증후군을 갖고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자면 몇 가지 테스트를 거쳐야 하지만 피터팬증후군에 걸렸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성향을 조사한다고 한다.그 첫째,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점이다. 성인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피터팬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누리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둘째,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해당된다. 꾸중 듣기 싫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어린 아이들처럼 자신이 저지른 일에 꾸중 들을까봐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심리현상이다.

피터팬증후군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cs free image

이어 세 번째는 변화의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때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변하려 들면 공포가 밀려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다.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꼽는다. 어린 아이들은 이기적이다. 상대를 배려하기에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탓이지만 이런 태도를 성인이 되어서도 보인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그러면 피터팬 증후군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솔직히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할 것을 권한다. 자신이 모조리 책임을 회피하고 남 탓을 한다면 성숙한 정신자세를 가질 때까지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그 다음에 내적 치유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약 자신이 어린 자녀에 머물고 싶은 성향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어린 시절 그런 성향을 갖게 된 상처나 계기가 있었을 것이므로 그런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은다.마지막으로 홀로서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슨 일이든 결정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이 성인임을 깨닫고 스스로 판단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처음에는 어렵고 낯설어도 작은 일부터 결정하기 시작하면 책임감도 생기고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